6월6일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러 갔습니다. 지난번에 못간 이승만 대통령 묘소 등을 방문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묘소
이승만 대통령의 묘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이라 꽤 참배객들이 많았습니다.

 

우남 리승만 박사의 업적 (이승만 대통령)
우남 리승만 박사의 업적 (이승만 대통령)

우남 리승만박사는 1875년에 탄생하여 1965년 91세로 서거한 대한민국의 건국대통령이시니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고 1895년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워 개화기 언론과 독립협회의 개혁운동을 주도하다가 1899년부터 옥고를 치렀으며 1904년 후에는 구국의 별사로 미국에 가서 활약하시었다.

1905년부터 5년간 조지워싱턴대학 하바드대학 프린스턴 대학에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모두 마치고 1910년에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으시었다.

1919년 삼일 독립운동 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에 추대되어 1945년 민족해방 후까지 그 법통지키며 해외에서 광복을 위한 외교와 민족교육 및 활동 으로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시었다.

해방후에는 미소양군의 분할점령과 강력한 국제 간섭에서 민족을 영토하여 국토분단과 신탁통치를 반대하며 민족자결의원칙에 의거 자율적 정부수립운동과 탁월한 외교로 1948년 총선거를 시행 제헌국회의장이 되어 민주주의 헌법을 제정하고 초대대통령에 당선 정부를 수립하여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을 세계에 선포하시었다.

1959년에는 북한공산집단의 남침을 격퇴하고 남북통일을 위해 힘썼으며 1952년에 해양주권을 선언하여 국익을 수호 1953년에는 반공포로를 석방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국가안보를 강화하시었다 1960년까지의 재임중 농지 개혁 교육진흥과 민족문화창달 경제부흥과 산업육성 민주제도 실시와 복지향상 등 국가발전의 대본을 확립하여 우리민족 사상 처음으로 자유민주국가 창건의 대업을 이룩하시었다

 

 

다음은 장군들의 묘소입니다. 625 전쟁에서 전사한 장성들 공로를 세우고 퇴역한 장성들도 묻혀있습니다.

 

장군 묘소

 

다음은 김영삼 대통령의 묘역입니다. 위치가 충혼당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가야하는데 위치가 좀 높은 곳에 있어서 그런가 방문객이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묘소

현충일 윤석열 대통령이 보낸 화환이 있습니다. 이날 국립묘지에 있는 전 대통령들의 묘소에는 대통령의 화환이 있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묘소

 

김영삼 대통령하면 문민정부, 민주화 두개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비석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단어가 여러번 나올 정도로 많은 업적이 있었습니다. 김영상 전 대통령도 서거하신지 7년 정도로 아직 1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2015년 향년 87세로 사망 후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2016년 5월 26일 이 비석을 세웠네요. 김영삼 대통령이 통치 시대는 먼 오래전이지만 그가 얼마전까지 살아계셨다는 부분에서는 먼 과거의 일은 아니네요.

 

김영삼 전 대통령은 27살 때부터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서 대통령이 될 때 이미 정치를 40년이나 하셨는데 그래서 인지 퇴임 후에는 눈에 띄는 정치활동은 안하셨던 것 같습니다.

 

김영삼 대통력 비석

 

김영삼 대통령은 야당 시절 국민의 자유와 기본적 인권 그리고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켜주는 방패요 산성이었으며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서는 30여년에 걸친 군사정치문화를 청산하고 문민 민주주의에로의 위대한 전환을 이룩한 한국 민주주의의 자랑스러운 지도자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확립해 한국의 민주주의를 반석위에 올려 놓았으며 정치개혁과 지방자치의 전면실시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완결했다. 재산공개와 정치자금 근절 등 위로부터의 개혁을 솔선수범하고 금융실명제와 역사바로세우기 세계화 정보화 등 각종 개혁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를 사회 전 부문으로 확산시켰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 민주화와 변화와 개혁은 세계 민주주의의 발전에 커다란 본보기가 되었으며 대한민국의 국제적위상을 높이고 한류가 온 세계로 뻗쳐 흐르는 전기가 되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걸어온 대도무문의 길과 한국 민주주의에의 업적을 기리고 한국 민주주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전 국민의 뜻을 담아 여기에 이 비를 세운다

2016년 5월 26일
글 김정남
글씨 신두영



다음은 경찰 충혼탑입니다. 위치로 봤을 때는 시야가 탁 트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더군요.

 

경찰충혼탑 국립서울현충원

 

1979년은 행안부를 내무부라고 부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경찰들도 임무 수행중 많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찰충혼탑은 서울국립현충원 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습니다.

 

경찰 충혼탑에서 바라본 전경입니다. 경치가 명당이네요.

 

경찰 충혼탑 전경

 

 

경찰충혼탑

 

다음은 현충문입니다. 현충문을 지나면 현충탑이 있습니다. 현충일 오전 행사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와서 참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후에 가니 행사 시설을 철거하더군요. (사진 오른쪽)

 

 

현충탑입니다. 참배객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호국영령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바이든 미 대통령 지난 5월 한국 방문시 참배했다고 합니다.

 

 

현충일 오후라 각 당 대표 정치인들의 화환도 많이 있었습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원내대표 국민의힘 당대표의 화환이 보입니다.

 

현충탑 화환 현충일

 

현충탑 지하에는 영현승천상이 있고 호국영령들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용사들의 위패가 보입니다. 이병 일병이면 대부분 20대 때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이겠네요.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위패 봉안 현충탑

 

 

위패를 봉안한 이유는 시신조차 찾지 못한 분들의 영면을 기원하고 그 분들의 위훈을 가리기 위한 것 입니다. 묘비에 묻힌 분들은 시신을 거뒀지만 이분들은 그 조차 없는 분들입니다. 더욱더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유해를 찾은 것과 못 찾은 것은 유족들의 슬픔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왔습니다.

 

호국영령들과 순국선열들의 헌신을 기리며 감사할 수 있는 하루였습니다.

 

또 이것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신 네분 전 대통령들의 묘소도 다 참배할 수 있게 되었네요. 필자는 조상들을 선산에 모시기 때문에 살면서 국립묘지에 갈 일이 많지는 않지만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또 국립묘지에 안장되시진 않았더라도 수많은 조상들이 전쟁에서 싸우고 또 군인들에게 밥을 지어주고 물자를 조달하며 나라를 위해 헌신하셨다는 것도 생각합니다. 국립묘지의 탑에는 자식과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던 어머니의 상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 모든 분들께 감사함을 되새기겠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1 - 호국영령의 묘, 박정희 대통령 묘소, 김대중 대통령 묘

현충일이 다가와서 국립서울현충원에 참배를 다녀왔습니다. 딱히 가까운 조상 중에 현충원에 계신 분은 없지만 나라를 위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는 마음으로 또 오랜만에 대한민국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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